분 노 하 라 !!
노무현 정신이 주는 시대적 교훈
larsang
2016. 10. 5. 08:09
노무현 정신이 주는 시대적 교훈
계절의 여왕 5월이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잔인한 달이다. 5.16 군사반란과 5.18 광주학살사건에 이어 23일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할 참극인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날이다. 비극으로 생애를 마친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 그에 대한 국민들의 추모열기가 7년이 지났음에도 꺼질 줄 모르고 더욱 불타오르고 있다. 추도식 전날인 22일에도 2만 군중이 생가에 모여 밤늦게까지 고인을 추모했으며 당일인 23일에도 국내와 해외 각처에서 추모의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노무현은 대통령 재직시 지지율이 10%를 오르내릴 정도로 바닥을 쳤던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그는 죽은 후 국민들 마음속에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7년 전 그의 장례기간에는 5백만 국민이 전국 각처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으며, 그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 생가에는 지금도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이 같은 국민들의 멈출 줄 모르는 추모의 열기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인 서민대통령이었다. 가공되지 않은 투박한 언어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벗어던지고 해방이후 우리나라를 지배해 온 거대한 기득권 보수세력에 맞서 싸운 다윗과 같은 인물이었다. 노무현은 대통령 임기 내내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놈현’이라는 이름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박근혜를 비롯한 국회의원 거의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그들이 직접 각본을 쓰고 스스로 배우가 되어 연기한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통해 막장수준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능멸했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술주정뱅이 막가파 가장으로 묘사하고 "개잡놈",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 같은 쌍스러운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내용은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해학적인 풍자가 아닌 노무현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규탄하는 여론에 대해 주최한 한나라당은 단순한 문화행사라고 반응했다. 만일 이러한 문화행사(?)가 지금 박근혜 정권에서 그녀를 대상으로 공연된다면 새누리당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인간 노무현은 당시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단아로 취급되었다. 그의 파격적인 탈권위적 행동은 고졸출신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정치권에서는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취급되었다. 오죽하면 그가 검찰개혁이라는 진정성을 가지고 소장 검사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시도했을 때 젊은 검사로부터 학력을 비꼬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었다. 그는 비록 고졸학력이지만 엄연히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법관으로 임용된 경력을 가진 변호사 출신임에도 실력보다 학벌을 따지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지상주의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학벌과 재력 등에 따라 인격을 평가하는 저질적인 한국풍토는 그가 속한 민주당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되었으며 2004년에는 헌정사상 최초로 사실상 여야일치의 압도적 찬성으로 재임 중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기상천외의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러한 정치권보다는 훨씬 현명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은 대단했다. 연일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와 항의가 계속되었다. 그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와해직전까지 몰렸다가 박근혜의 천막당사와 읍소작전으로 간신히 살아남았고 민주당에서도 탄핵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대거 탈락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야당 뿐 아니라 여당에서까지 ‘노무현 정신‘이라는 말이 경쟁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면 노무현 정신이 무엇이길래 여야 가릴 것 없이 부르짖고 있는 것일까. 나는 노무현 정신을 “참여 민주주의”, “서민대중을 위한 정치”, “소신을 지키는 정치”로 요약하고 싶다. 봉하마을 묘소 너럭바위 밑에는 그의 생전 연설의 한 대목인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는 그가 지지그룹인 ’노사모’ 총회에서 한 연설인데 ‘노무현 정신’을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즉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의식이 깨어있지 않으면 이를 악용한 나쁜 세력, 말하자면 독재나 착취세력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참여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모든 정치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정치인들은 이를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노무현은 이 같은 소신에 따라 자신의 정부를 ‘참여정부’라고 정했다. 국민들의 참여가 일상화되어 진정한 국민주권, 시민주권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이다. 이와 함께 노무현은 “국민들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아 시대” 등을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을 실천방안으로 삼았다.
그러나 노무현 당시에는 이러한 그의 국정철학이나 이념이 정치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방이후 역대 군부독재와 권위주주의 정권에 길들여져 온 많은 국민들은 오히려 대통령이 권위가 없고 천박한 언사를 구사한다고 비웃었다. 따라서 무엇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모두 “놈현 탓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사실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정제되지 않은 말을 쏟아내 유난히 구설수에 자주 올랐다. 그러나 노무현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국민들은 이제야 노무현의 진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가족들의 비리의혹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죽음으로 응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청렴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노무현만큼 청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박정희인가, 이명박인가, 아니면 전두환, 노태우인가. 그를 죽음으로 내몬 사안들도 대부분 과장되거나 도덕적으로 망신주기 위해 국정원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 그를 수사했던 당사자들의 입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또한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홍준표 등 몇몇 정치인들은 봉하마을 생가가 아방궁이니 딸이 사는 뉴저지 아파트가 호화아파트라느니 하는 터무니없이 과장된 기사와 논평을 쏟아내 노무현 망신주기에 열을 올렸다. 당시 노무현을 수사했고 그가 죽자 저승까지 쫓아가 따지겠노라고 했던 검찰수사팀 대부분이 현재 거액의 금품수수와 로비 등 법조비리로 수사 받는 처지가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무현이 죽고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 8년동안 우리나라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젊은이들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남북대화는 물 건너갔고 한반도 평화는 더욱 멀어졌다. 또한 이들은 국민의 충복으로 봉사하기보다는 더욱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부자감세 등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은 노무현의 ‘더불어 함께 하고 참여하는’ 시대정신을 더욱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노무현이 생을 마감한지 7년. 이제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아무리 종편과 보수언론들이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어도 국민들은 자신들의 피부에 와 닿는 심각한 부조리를 체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노인들에게까지 파급된 SNS는 더 이상 진실을 감추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여당의 참패로 끝난 지난 총선의 결과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 불어 닥친 버니 샌더스 돌풍도 친기업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이제 국민들은 깨어나 선택해야 한다. 노무현 정신을 역사박물관에 소장하여 진열할 것이 아니다. 위정자들에게 이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 이상 1%의 기득권자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99%의 억압받고 소외된 서민대중들을 위해 특권과 반칙이 용인되지 않는 정책을 펴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노무현 정신이다.
(2016. 5.23 뉴욕에서 虛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