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월대보름입니다. 늙으면 추억 속에서 산다더니 저 또한 6.25 피난시절 부산 변두리 거제리(현재는 연제구 거제동)라는 시골마을에서 지낼 때 정월대보름날 마을에서 없는 시절에도 간직했을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처녀들이 손을 맞잡고 강강수월래 노래하며 빙빙 원을 돌리며 춤추고 뒷동산과 들판에서는 마을 청년들이 사방에서 쥐불놀이하는 것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피난학교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지금은 뉴욕 외곽의 집에서 정월대보름 밤 혼자 창밖을 훤히 비추는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와인잔을 기울입니다. 문득 몇 년 전 추석에 벗님들과 나누었던 졸필 ‘月下獨酌’ 글이 생각나 다시 한 번 꺼내봅니다.
월하독작(月下獨酌)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애주가(愛酒家)가 분명하다. 그러나 주량은 남들에 비해 유별날 정도로 많지는 않고 술에 취해 특별히 주사(酒邪)를 부린 기억은 없다. 식사와 함께 소주 반병이면 딱 알맞은 주량이다. 50년 전 청년시절 언젠가 술에 취해 귀가 길에 행인과 시비를 붙었던 일이 있는데 당시 나를 키워주시던 외할머니의 인자하고도 간곡한 훈계를 받은 뒤로는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크게 실수한 적은 없다. 東醫寶鑑에는 술은 ‘오곡의 진액이고 쌀누룩의 정수’라고 정의한다. 또한 술은 뜨거운 음식에 속해 한 두잔 가볍게 마시는 것은 혈액순환을 도와 기운을 나게 하며 온갖 邪氣와 나쁘고 독한 기운을 몰아내는데 술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한다. 또한 적당한 술은 우울증을 없애주며 사람들과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어 대인관계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과음이나 지속적인 음주습관은 몸에 열을 축적시켜 내부의 진액을 마르게 하고 피와 호르몬을 태워 여러 질병을 유발시킨다고 한다. 특히 알콜중독은 쉽게 고칠 수 없는 대단히 고약한 질병이다.
나는 벗님들과 함께 오순도순 대화하면서 술을 나누는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그런데 미국이민생활은 그런 재미를 앗아 갔다. 요즘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술 마시고 운전하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모험이다. 적발되면 여지없이 수갑차고 전과자가 되는 것은 물론 벌금과 변호사비용 등 막대한 재정손실이 초래된다, 그나마 한국에는 대리운전이 정착되어 있다지만 미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택시를 타도 한국과는 운전거리가 훨씬 멀어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배보다 배꼽이 몇 배 큰 것이다. 결국 벗님들과 집에서 편안하게 마셔야 하는데 한 동네라면 모르되 이웃이라도 몇 십 마일씩 운전해야 하는 것이 미국이다. 또 다음날 일해야 하는 이민생활의 고달픔도 그러한 여유를 앗아가는데 일조한다. 그러니 혼자 집에서 월하독작(月下獨酌) 혹은 등하독작(燈下獨酌)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대화의 즐거움이 없는 독작이니 술 마시는 즐거움의 큰 부분이 상실된 셈이다. 그러나 한가위 같은 대보름달 아래 혼자 독작하는 재미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오래전 추석에 일행 세 명이 캐나다 퀘백 호숫가에 간 적이 있었다. 그날 밤 휘영청 밝은 달밤에 호숫가 식당 야외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데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었다. 분위기에 취한 일행 한 분이 “보름달이 다섯 개가 떠있다”면서 “하늘에 하나, 호수에 하나, 술잔에 하나, 맞은편 사람 눈동자에 두 개가 떠 있으니 모두 다섯 개 아니냐.”고 농을 쳤다. 나는 다섯이 아니라 아홉 개라고 우겼다. 모두 외눈박이가 아니니 사람 눈동자만 여섯 개 아니냐고 말해 일행이 파안대소한 적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모정결핍증(母情缺乏症)에 힘들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전쟁 통에 젊은 어머니가 아들만 넷을 키우자니 자식들에게 골고루 따뜻한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하는 것이 훗날 자식을 넷 키우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달, 특히 보름달을 유난히 좋아한다. 부드러운 달빛에서 성모마리아와 같은 따뜻한 母情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해마다 추석이나 정월대보름이면 일부러 롱아일랜드 해변에 달맞이하러 다녔다, 아니면 집에서 월하독작했다. 미국에서는 모두 바쁜 일상으로 한가하게 벗님들과 마음 놓고 대작할 기회도 많지 않으니 추석이나 정월대보름 밤에도 와인잔을 놓고 달을 벗삼아 월하독작을 할 수 밖에 없다. 주선(酒仙) 이태백의 시라고 알려진 월하독작(月下獨酌)을 벗님들과 나누며 휘영청 밝은 달빛아래 와인 한 잔에 취해 본다.
월하독작(月下獨酌)
花問一壺酒 獨酌無相親 꽃 속에서 술 한 병 놓고 친구 없이 홀로 마신다.
擧杯遨明月 對影成三人 잔을 들어 밝은 달맞이하니 그림자 짝하여 세 사람일세.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달이야 술마실 리 없고 그림자 또한 내 몸 따라 움직일 뿐이다.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그럼에도 잠시 달과 내 그림자가 친구되어 봄날을 즐겨야 하리.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내가 노래하면 달도 배회하고 춤추면 그림자도 어지러이 움직이네.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술 깨었을 때야 함께 즐기지만 술 취하면 각기 흩어지네.
永訣無情游 相期邈雲漢 정 없는 교류나마 오래오래 맺으려 저 멀리 은하수에 기약해 보네.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만일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酒星이 있을 리 없고.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만일 대지가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땅에 酒泉이 없었을 것이다.
天地旣愛酒 愛酒不愧天 하늘과 땅이 애愛酒하거늘 애주를 하늘에 부끄러워함이 없음이다.
己聞淸比聖 復道濁如賢 듣건대 맑은 술은 聖人에 비유되고 탁한 술은 賢人과 같다 하였다.
賢聖旣己飮 何必求神仙 나 이미 성인과 현인을 마셨으니 무엇하러 神仙을 구하려 하겠는가.
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 석잔 술 마시니 大道에 통하고 한 말 술 마시니 自然과 합해지도다.
但得醉中趣 勿爲醒者傳 취흥이 도도하면 그만인 것, 술 마시지 않는 자와는 말하지 말라.
耶穌不愛酒 沒有酒奇蹟 만일 예수님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술의 奇籍도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한 줄은 내가 감히 酒仙 이태백의 月下獨酌 詩에 그리스도교 신자 愛酒家의 입장으로 한 줄을 첨가했다. 酒仙께서 저승에서 무릎을 치시며 너그러이 받아주시리라 믿는다.
뉴욕에서 虛壙이 酒酊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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